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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일상/회사 밖 홀로서기

#2.퇴사 그 이후

by 뉴리미 2020. 6. 25.

 

 

 

 

1/ 퇴사, 그 헛헛함에 대하여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던 퇴사날이 왔다. 마냥 기쁠 줄 알았는데 100% 시원하지는 않는 느낌이 꼭 졸업식 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모두가 쭉 다니는 학교에 나혼자서 졸업하는 느낌이랄까.


특히 하루 종일 수십명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니며 똑같은 대화를 계속하여 나누는 것이 여간 힘든일이 아니었다.  ‘언제가? 어디로 간댔지? 집은 어떻게 됐어? 거기가서는 뭐하려구? ‘ 똑같은 대답 오조오억번 반복에 지칠 때 쯤 집에 가야하는 시간이 왔다.

한명 한명 정겨운 작별 인사를 나눈 후에 고마운 분들께 받은 선물을 양손 가득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그래도 여러명의 팀 사람들이 배웅해주니 나가는 길이 그리 섭섭치 않았다. 

그런데 밖으로 나와서 남편 차를 기다리고 있다가 눈물이 빵 터져버렸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허무함이 몰려들었고 남편 차에 타서도 계속해서 엉엉 울었다. 퇴사퇴사 노래를 부르다가 막상 또 퇴사하게 되니 섭섭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이런 나를 보고 남편이 놀리며 하는말.

” 그렇게 회사를 좋아하는 줄 몰랐네? 차 돌릴까? 지금이라도 팀장님한테 가서 잘못했다고 빌자!!”

집으로 와서도 헛헛한 마음이 가시질 않아 혼자 청승맞게 훌쩍거렸다. (쭈굴)

 

 

퇴사날 받은 선물. 그래도 헛살진 않았나보다
퇴사축하(?) 파티에서, 팀장님이 준비해 주신 케이크

 

 

 

2/ 반전 그리고 환희

그리고 다음달이 되자 거짓말처럼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날씨는 또 왜이렇게 좋은지.. 오랜만에 아침에 뚜비를 산책시키며 청명한 하늘에 콧노래마저 나왔다. 

“그래, 이거지 이거!”

한창 일할 시간에 내 시간을 갖는게 너무 행복했다. 할일 리스트를 만들어서 청소도 하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요가매트 깔고 스트레칭도 해보고, 점심으로는 닭가슴살 샐러드에 와인을 곁들여 먹었다. 

아, 더이상 바랄게 없구나!

 

 

브런치와 와인,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다!

 

 

 

3/ 미처 몰랐던 이야기

이건,,,, 미처 예상치 못했던 부분에 대한 이야기이다. 직장인이라는 신분에서 갑자기 가정 주부가 되어버린 나는 신나게 ‘가사노동’을 해내고 있었다. 깨끗하게 치워놓은 집을 보며 꽤 흡족했다. 나도 몰랐던 재능이 있었나 싶어 신나게 청소,빨래를 해댔다.

그런데 이 집안일이라는게 들이는 노력 대비해서 그닥 티가 나지 않는다. 창틀청소, 싱크대 닦기, 서랍 정리 등 내 나름 노력을 쏟아 부었는데도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알아채지 못하면 그게 그렇게 섭섭하더라.  

친정 아버지는 전화해서 뭘 하냐고 묻는다. 지금 이거저거 하느라 바쁘다고 하면 돌아오는 말에 괜히 심통이 난다. 

“니가 뭘 하느라 바빠? 집에서 노는애가… 이제 가정주부니까 반찬좀 신경써서 하고 남편 밥좀 잘 챙겨먹여” 

하루 종일 분리수거, 집수리, 청소, 빨래, 주민센터 방문 등으로 나름 땀흘리며 분주하게 보냈는데도 나의 분주함은 ‘일’로 간주되지 않는다.

이전에는 '가정주부가 밥도 안하고 어딜 놀러다니냐'는 아빠의 고지식한 말에 ‘난 가정 주부가 아니고, 남편과 동등하게 일하는 직장인’이라고 받아쳤는데, 이제는 받아칠 말이 없어 괜히 더 뿔이났다.

아, 이런 거구나… 오늘 또 깊게 깨우친다. 나 또한 누군가를 그런 시선으로 보지 않았는지 지난날의 나를 반성도 해본다. 앞으로의 계획도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되새기고 단단히 다져본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어쨌든 자유다!